게오르크 칸토어의 무한집합론
우리들이 살아나가는 전 우주세계는 수(數)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이 수로 이루어진 무한한 모든 수가 동시에 사라진다면, 우리들이 살아나가는 우주는 어떻게 될까? 만일 이 모든 수가 동시에 살라진다면, 역시 이 우주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우주만물도 동시에 함께 사라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그 위대한 신(神)도 역시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란 바로 수(數)의 들어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러한 수의 사라짐을 통해 무한한 신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사라져 보이지 않는 신(神)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사라져버린 무한한 수를 다시 복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또한 사라져버린 무한한 수의 세계를 어떻게 복원할까? 우리들은 이를 회복의 차원에서 한번 쯤 고민해 볼 필요성이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고민을 수학적인 가정법을 이용해 풀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의 손을 들여다보자. 그러면 오른 손에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고, 왼 손에 다섯 개의 손가락이 역시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하나의 가정법을 만들어보자.
만일 우리들이 손가락의 숫자를 세 개 밖에 셀 수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우리들은 네 번째 손가락부터는 손가락의 숫자를 아무도 셀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네 번째 손가락부터는 얼마나 많은 다른 손가락들이 존재하는지조차 역시 알 수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은 무한한 수(數)의 세계를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무한한 수(數)의 세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또한 신(神)의 세계를 전혀 알아낼 수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무한의 세계를 풀어낼 수 있는 바른 해안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바른 해안은 해법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오른 손과 왼손을 서로 맞대어 포개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오른 손과 왼손을 맞대어 포개보면, 두 손에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들이 각기 일대일로 서로 맞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 역시, 서로 일대일로 맞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역시 보이지 않는 네 번째 손가락부터 나타나는 다른 모든 손가락의 숫자를 셀 수 있다는 가정법의 추론이 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 개밖에 셀 수 없는 무지한 인간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수를 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학적으로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 무한한 세계를 풀어내고,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의 수학은 여기에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수학(數學)이란 다른 개념에 같은 이름을 붙이는 기술을 만들어내는 학문이다. 즉 다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실상은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수학적인 개념을 통해, 우리들은 모든 사고를 절약하는 과학적인 방향으로, 우리의 의식세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적인 의식의 진보는, 결국 우리들이 살아나가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힘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내는, 그 수학적인 의지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의 무한 집합론의 특성
우리들은 서론을 통해 인간이 알 수 없는 이 무한한 수(數)의 세계를 가정법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를 명확한 수식으로 풀어서 풀어내고 우리들의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가이다. 또한 이를 신(神)이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그 언어학으로도 풀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 언어학이 인류문명사에 과연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모두 함께 추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들은 인류문명의 수학사를 통해 이러한 일에 도전한 학자를 잘 알고 있다. 바로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이다.
게오르크 칸토어는 어떻게 풀어낼 수 없는 이 무한한 수(數)의 세계를 간단하게 풀어낼 수 있었을까? 우선 칸토어의 해법을 알아보자. 칸토어가 고안해 낸 방법은 무한을 수식으로 풀어내는, 바로 그 무한의 집합{ }개념이다. 우리들은 이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길이가 1인 어떤 직선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조용히 마음을 비우고 이 준비된 직선의 가운데 부분을 1/3로 지워본다. 그러면 그 결과 좌우에 두 직선이 나누어 새롭게 생기는데, 이때 이 두 직선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역시 가운데 부분을 1/3로 지워낸다. 우리들이 이러한 작업을 무수히 반복하면, 결국 최후에 남아 있는 작은 직선조각모임들이 무한히 만들어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셀 수 없는 직선의 수많은 점집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작은 조각들의 모임을 칸토어 먼지라고 부르며, 또한 이러한 먼지의 집합을 칸토어 집합(Contor Set)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풀어지는 칸토어 집합의 전체적인 크기가 무엇이냐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칸토어가 고안해 낸 무한집합의 크기는 바로 0이라는 사실이다. 즉 신이 창조해낸 무한한 전체 우주의 크기 값이 바로 0 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신의 성격이 바로 0 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수식으로 지워지는 구간의 길이의 합을 구해 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즉 보이는 것을 지워, 보이지 않는 무한한 수의 세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수식으로 전개해보자. 이때 맨 처음 지워지는 구간의 길이는 1/3이 될 것이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남은 1/3 크기의 구간 2개를 각각 3등분한 다음, 그 중 하나인 1/9 크기의 구간이 지워지므로 지워지는 구간의 길이는 2/9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1/27 크기의 구간 4개, 즉 4/27만큼의 길이가 지워질 것이다. 결국 이는 일반항이 an = 1/2 * (2/3)n인 등비수열과 같은 형식이 될 것이고, 따라서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지워지는 길이의 총합을 전부 계산해내면, 그 크기가 바로 0임 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무한집합의 크기가 0이 됨을 알 수 있다. 결국 칸토어의 무한집합은 나아가 셀 수 없는(uncountable) 무한집합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아래와 같은 하나의 집합과 다른 집합과의 관계이다. 이러한 집합에서는 어떤 등식이 성립할까? 우리들은 이러한 수(數)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 영과 자연수의 집합={ 0, 1, 2, 3, 4, 5, 6, 7, 8,9.. }
■ 짝수 전체의 집합={ 2, 4, 6, 8, ...}
■ 홀수 전체의 집합={ 1, 3, 5, .... }
■ 소수 전체의 집합={ 2, 3, 5, 7, 11, 13, 17, 19 ... }
■ 정수 전체의 집합={ ..., -3, -2, -1. 0, 1, 2, 3, ... }
■ 양의 유리수 전체의 집합={1/1, 2/1, 1/2, 3/1, 1/3, 4/1, 3/2, 2/3, 1/4,...}
■ 유리수 전체의 집합={0, 1/1, -1/1, 2/1, -2/1, 1/2, -1/2, 3/1, -3/1, 1/3, -1/3, 4/1, -4/1, 3/2, -3/2, 2/3, -2/3, 1/4, -1/4, ...}
독일의 수학자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는 기준이 명확한 사물의 모임을 '집합'이라고 정의했다. 문제는 위 식과 같은 집합에서 두 개 이상의 집합과 다른 집합 사이의 크기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었다. 그는 무한집합의 크기를 정의하면서, 이 무한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즉, 그는 두 집합의 다른 원소 사이에 우리들의 두 손처럼 서로 일대일대응이 존재한다면, 그때 그 두 집합은 같은 농도를 갖는다고 정의하면서, 유한집합에서 원소의 개수에 해당하는 무한집합에서의 농도 개념을, 역시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두 집합 A와 B에서 집합 A는 집합 B의 부분집합과 일대일 대응시킬 수 있지만, 집합 B는 집합 A의 부분집합과 일대일대응 시킬 수 없을 때, 이때 집합 B는 집합 A보다 크다.”고 정의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두 집합 A와 B에서 집합 A는 집합 B의 부분집합과, 집합 B는 집합 A의 부분집합과 일대일대응 시킬 수 있다면, 그때 집합 A와 집합 B는 서로 같다.”는 뜻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는 사실에 어긋나므로 유한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무한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한집합의 경우라면, 자신의 진부분집합(집합 A의 모든 원소가 전체집합 U에 속하고, 집합 U와 같지 않을 때, 전체집합 U에 대하여 집합 A 를 진부분집합이라고 규정)과 절대로 같아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n개의 원소를 가지는 집합의 진부분집합은 n-1개 이하의 원소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소가 무한히 많은 무한집합(無限集合, infinite)은 자신의 진부분집합과 대등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소의 개수가 무한개인 자연수의 집합 A와 짝수의 집합 B가 있을 때, 다음과 같이 무한히 일대일 대응시킬 수 있으므로 두 집합의 크기는 서로 같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크기가 나타나는 형상(形狀)의 모습이다. 우리들은 칸토어 집합에서 맨 처음 가운데 구간을 제거하고, 남은 오른쪽 구간에 해당하는 부분을 3배로 확대하면 원래의 칸토어 집합과 같은 모양이 나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다시 거기서 오른쪽 부분을 3배로 확대하고, 또다시 그 중 반쪽을 3배로 확대하고 그 결과를 보면, … 결국 계속 같은 모양이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이는 형상으로도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습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구조를 프랙탈(fractal)구조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수의 무한집합론에서 몇 가지 특성을 얻어낼 수 있다.
첫째로, 무한집합의 크기는 0이 되며, 이 무한집합의 원소는 셀 수 없는(uncountable) 무한한 무한집합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두 집합 A와 B에서 집합 A는 집합 B의 부분집합과, 집합 B는 집합 A의 부분집합과 서로 일대일로 대응 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무한집합의 세계라도 결국 집합 A와 집합 B는 서로 같다는 것이다.
셋째로, 무한집합의 형상은 외견상 불규칙하고 확실한 경계가 나타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그 일부분을 세밀히 확대해 보면, 바로 그 일부분이 전체와 닮은 모습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는 플랙탈(fractal)구조형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으로 설계된 한글정음
문제는 이러한 무한집합론의 특성과 플랙탈(fractal)구조형상이 신(神)이 말씀으로 창조해냈다는 그 언어와의 상관관계이다. 이는 신(神)이 어떤 언어로 이 세상을 창조했는가를 규명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신은 어떤 언어로 이 세상을 창조했을까?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약 6천 개에 달하는 현대어가 현재 인류문명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들 언어는 5만~7만 년 전에 초기 아프리카인들이 사용한 고대 언어에서 모두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고대 아프리카 언어 중에서, 과연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에 제대로 부합하는 언어가 존재하는가이다. 또한 이러한 무한집합론의 성격을 그대로 현대사회까지 유지해온 언어가 과연 존재하는가이다. 만일 인류문명사회에 이러한 언어가 현재까지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창조의 원리로서 말씀하신, 바로 그 신(神)의 언어가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언어를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민족이 사용하는 한글정음이다. 한글정음은 신의 바른 음이요, 말씀이요, 소리이다. 우리들은 한글정음이 왜 신의 언어가 되는지를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의 특성으로 밝혀낼 수 있다. 왜냐하면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은 무한한 신의 능력을 규명하는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은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의 특성과 한글정음의 특성을 비교해보자.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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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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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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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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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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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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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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ㄲ [쌍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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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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ㅐ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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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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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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ㄸ [쌍디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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ㅑ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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ㅒ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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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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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디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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ㅃ [쌍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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ㅓ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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ㅔ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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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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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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ㅆ [쌍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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ㅕ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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ㅖ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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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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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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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 [쌍지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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ㅗ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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ㅘ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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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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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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ㅛ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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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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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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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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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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ㅚ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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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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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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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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ㅝ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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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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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 [지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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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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ㅞ [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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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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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 [치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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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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ㅟ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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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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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키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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ㅢ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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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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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 [티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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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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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 [피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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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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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히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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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자음과 모음은 모두 수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첫 번째 특성으로 무한집합의 크기는 0이 되며, 이 무한집합의 원소는 셀 수 없는(uncountable) 무한한 무한집합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슨 말인가! 이는 신이 창조한 천지창조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무한집합의 크기가 0이 된다는 것은, 바로 빅뱅의 점(點)의 폭발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천지창조의 빅뱅점이 최초로 폭발할 시에, 바로 그 값은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0의 세계라는 말이다. 또한 무한집합의 원소가 셀 수 없는 무한한 성격을 띤다는 것은 점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확장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즉 전체적으로 0의 확장성을 나타내는 방향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과연 인류문명사회에 이러한 특성을 나타내는 언어가 존재할까? 한 마디로 이러한 언어는 전 인류의 사용언어에서 오르지 한글정음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러한 특성을 한글의 특성에서 찾아낼 수 있다. 한글정음은 신의 정음(正音)으로 모든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천지인(天地人)의 형상과 움직임을 기하학적인 개념으로 형상화하여 만들어낸 문자이다. 즉 한글정음의 원리는 천(☉),지(ㅡ),인(ㅣ)의 모든 음성 값이 0으로 작동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늘(☉)을 나타내는 점은 그 중심점(☀: 점의 확산)값이 0이며, 바로 이 0에서 큰 원(◯: 최 외곽의 우주)으로 확산하는 값, 또한 0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확산의 결과가 무한한 지(ㅡ)와 인(ㅣ)의 방향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향성의 값은 모두 중심점(☀. 0. 최초의 하늘)의 확산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는 그대로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의 특성과 그대로 일치한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한글의 모든 모음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한글모음(ㅏ, ㅔ, ㅓ, ㅐ, ㅗ, ㅚ, ㅜ, ㅟ, ㅡ, ㅣ, ㅑ, ㅒ, ㅕ, ㅖ, ㅘ, ㅙ, ㅛ, ㅝ, ㅞ, ㅠ, ㅢ)의 형태를 살펴보면, 전적으로 모든 한글모음의 정음은 점(하늘 : ☉)의 진행방향성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신(神)은 이렇게 한글정음으로 자신의 나아갈 방향을 온 인류에게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둘째로, 두 집합 A와 B에서 집합 A는 집합 B의 부분집합과, 집합 B는 집합 A의 부분집합과 서로 일대일로 대응 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무한집합의 세계라도, 결국 집합 A와 집합 B는 서로 같다는 것이다. 이는 무한집합에서 모든 수의 한계를 검증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글정음은 무한한 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 무한한 소리음을 일대일 대응원리로서 검증해낼 수 있다. 이는 즉 말씀의 언어로 우주를 창조한 신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이처럼 한글정음은 무한집합의 일대일 대응원리로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이를 한글정음의 모음과 자음에서 그대로 찾아낼 수 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한글정음은 크게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글정음은 모음과 자음의 일대일 대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표와 같이 한글은 모음과 자음의 섞임 모임으로 구성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즉 한글은 가로의 모음과 세로의 자음이 일대일 대응구조 속에서 탄생하는 섞임 글자라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태’자를 살펴보면, 한글은 자음 티긋(ㅌ)자와 모음 애(ㅐ)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태’자는 세로의 자음 티긋(ㅌ)자와 가로의 모음 애(ㅐ)자의 일대일 대응의 섞임 구조로 ‘태’자를 만들어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글의 ‘태’자를 상징하는 영어의 EH(태)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이처럼 한글은 영어와는 달리 무한한 신의 뜻을 만들어내며 모든 소리음을 만들어낸다.
셋째로, 무한집합의 형상은 외견상 불규칙하고 확실한 경계가 나타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그 일부분을 세밀히 확대해 보면, 바로 그 일부분이 전체와 닮은 모습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는 프랙탈(fractal)구조형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한글로 과연 이러한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프랙탈(fractal)구조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구조이다. 무한집합에서 이러한 프랙탈(fractal)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그 크기의 구조의 합산 값아 항상 0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이때 합산 값이 0이 된다는 것은, 결국 음과 양이 합쳐 항상 0이 되는 일대일 대응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한글의 수리학적 구조는 이러한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한글의 가지고 있는 무한의 세계를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으로 풀어보았었다.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무한의 세계를 집합{ }이라는 수식으로 간단히 전개하는 식이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집합(集合)’ 이란 사물의 모임을 명확히 규명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명확한 규명을 보이지 않는 무한의 세계에서도 규명해 낸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수식으로 규명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한집합론의 세계가 신이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그 언어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바로 전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 중에서도 오직 한글정음에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왜 한글정음에서만 무한집합론의 특성이 바르게 일치하여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한글은 신이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대우주의 순환이치로 창제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글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유일한 하나님의 언어라는 사실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게 준 신의 언어를 전 인류를 위해 사용하여야만 한다. 우리가 한글을 아끼고 사랑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인 한글 속에서 인류평화를 구현하는 바른 지혜를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